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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개팅 첫 만남이 무조건 삼겹살에 소주인 이유(에프터 100%)

by 잘먹는박군 202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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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이 들어왔다. 나이는 동갑이고 술도 즐기는 편이라고 한다.

분당에서 일하는 직장인인 나는 소개팅 시즌을 맞이했다. 상대는 동갑에 술도 즐기는 편이라고 한다. 나이 서른을 먹고 처음 하는 소개팅에 지방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나는 서울놈 몇 명에게 소개팅 맛집 추천이라도 받아보려고 하다가, 괜히 말하기 좋아하는 헤비 토커(자칭 스몰 토커)랑 한 시간 카톡 지옥에 빠질까 봐 어플을 닫았다. 센스 있는 또 다른 친구가 번뜩 생각나 전화를 하려다가, 최근에 결혼 한 '결혼 예찬론자'라 장소 이야기는 뒤로하고 결혼을 염두에 둔 배우자니 뭐니 본인 결혼관을 썰어 넣은 김칫국부터 한 접시 내줄 것 같아 혼자 찾아보기로 했다.

나의 인스타 서칭 능력은 하수 중에 하수라 타자기에 치는 텍스트라고는 "OO역 맛집, OO역 소개팅" 뿐인데 당연히 광고성 시뻘건 이미지 범벅들만 나와서 폰을 또 한 번 뒤집었다. 네이버 지도 어플을 켜서 맛집 탭을 누르니 수많은 GPS 기반 매장들이 리스트업되는데, 직전 연애에서 이따위로 데이트 코스 찾다가 들켜서 몇 번 정색을 당했던 PTSD가 떠올라서 등땀 한줄기가 팬티 라벨까지 수직 낙하해버렸다. (이 능력은 내 생각에는 타고나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됨ㅇㅇ)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 위에 서울 놈들은 내가 소개팅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나 혼자 서른의 소개팅은 뭔가 대학생, 사회 초년생 때와 달라야 할 것 같다는 무의식으로 가득 차 셀프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다. 이십 대의 절반을 한 사람과 연애하다가 서른의 초입에 문득 혼자가 되어 버린 나로서는, 그 연애를 끝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소개팅을 시작하려 했지만, 직전 연애에서의 '진지한 관계'를 종지부 찍지 못한 채 소개팅을 연애의 연장전으로 끌고 가려는 병신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차이지)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얼굴도 보지 못한 소개팅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레알 김치국이라는 생각도 분명히 든다.  

 

"혹시 이번 주 금요일 7시 삼겹살에 소주 괜찮으세요?" "네 좋아요"

김광석 선생님 때의 그 '서른 즈음에'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아직은 서른이 낯설다.(그때의 서른은 지금 체감상 50세?) 마음은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쌉소리를 내가 할 줄은 몰랐는데, 진심이다. 바꿔 말하면 나한테 '삼십 대'란 햇살이 더 이상 들지 않는 동굴 초입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뚜렷하다. 그 동굴 안에서의 소개팅은 뭔가 갖추어진 모습과 적당을 넘어선 과한 노련미가 오가는 경합의 장이 아닐까 그저 짐작만이 가득했다. 어찌됬든 나는 나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잡념을 제치고 "금요일 7시 삼소 콜?" 전략을 수립했다. 전략 수립의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맛있는 음식에 소주 한 잔 할 때 내가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줍짢은 그놈의 '네이버 지도'에서 찾은 '파스타 맛집'에 들어갔다가 옆 테이블 키즈들의 3단 공중제비로 소개팅이 개망했던 경험도 경험이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과연 이야기를 주도 할 수 있을까? 3초만 생각해봐도 안되겠더라. 소개팅 하수들은 알 것이다. 우선 뭔가 그런 곳에서 흐르는 공기는 메뉴만큼 느끼하고, 가사 없는 가곡이나 클래식 BGM이 깔리는 순간 그 Oilly 함은 배가된다. 멘트를 칠 때는 어떤가? 공기들이 내 멘트에 맞춰 지들이 멈춰준다고 해야 할까?? 여튼 파스타 먹방이라면 '로제'에 '크림'까지 두 개는 앉은 자리에서 기본이고 샐러드바까지 작살낼 수 있는 본인이지만, 소개팅 장소로서 여길 선택했다가는 내가 내 페이스대로 못 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페이스를 찾지 못하면, 시간과 정성을 다해 나온 상대방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의 욕심을 조금 더 앞세우기로 했다.

 

두 번째는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공통 관심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취업 후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주 1회 맛있는 음식을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캐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에 한 잔 곁들이며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에 맛있는 술이어도 혼술을 하면 그 맛이 안 나더라. 결국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비슷한 성향(?)이라고 해야 할까? 무튼 비슷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 더 나와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파스타보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하면서 편안하고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서로 싫지 않게 봐줄 그런 사람이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노력하는 내 모습을 어쩌면 이번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아 카톡을 보냈고, 좋다는 답변이 와서 금요일 저녁 Spring Breeze를 타고 삼겹살집에 도착했다.

 

2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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